소통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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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webzine(20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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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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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e
of korean confucian culture25
06웹진 솔비움

시와 산책
이 정 록 시인돌의 이마를 짚다
이 정 록집으로 돌아오는
먼 길, 내 책가방 속에는
돌멩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나 몰래 집어넣은
그 돌멩이의 무게로
고추 모종 같은 내 어깨는
멍 가실 날이 없었다
모종삽 같은 내 얼굴을 피해
어머니는 그때 눈물을 훔치셨던가
삼학년 때까지 져 나른
그 쓸데없는 잔돌들을, 어머니는
안마당과 뒤뜰 추녀 밑에 깔아놓으셨다
큰애 덕분에
흙 마당이 패이지 않겠네
그 옛날, 어머니의 가슴속
붉은 낙숫물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어머니 눈망울 속 버걱거리던 잔돌들은
어디에 박혀서 흔적도 없는 주춧돌이 되었을까
내 가슴 한쪽
분을 이기지 못하던 짱돌과
또 다른 가슴 한켠
추녀 밑 갸륵한 잔돌 사이에서
나는 얼마나 오래도록 돌의 이마를 짚어왔던가
흙덩이보다도 쉬 부서지는 다짐 위에
얼마나 많은 낙숫물을 받아왔던가
언제 어디서든, 나는
돌을 쓰다듬는 버릇이 있다
하늘의 처마 밑에서
낙숫물을 받들고 있는
세상 모든 어머니라는 돌을
아이들이 몰래 집어넣은 돌멩이 때문에 내 가방은 돌 자루 같았다. 내 무거운 책가방을 받아들려고 어머니는 감나무 밑에까지만 나와 계셨다. 신작로까지 나오면 지나가는 아이들이 볼 테니까. 그러면 아이들이 엄마 젖 더 먹고 학교에 오라고 놀려댈 테니까. 어머니의 신발코는 감나무 이파리가 어른거려 표범 가죽처럼 일렁였다. 가슴에도 표범이 한 마리 송곳니를 세우고 있었으리라. 어머니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탁탁 털며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네 잘못 아니잖아.” 나는 매일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맞아. 돌을 넣은 놈들이 돼지똥구멍같이 더러운 것들이지.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그제야 어깨를 펴고 마루 밑 엄마를 바라보았다. 추녀 밑, 어제의 잔돌 옆에 오늘 지고 온 돌멩이를 보태며 엄니가 박꽃처럼 웃으셨다. “장마가 와도 큰애 덕분에 흙 마당이 패이지 않겠네.” 받침을 다 떼어버리고 떠듬떠듬 한글을 익히고 시집왔을 때, 엄니의 나이는 20살이었다. 시아버지는 한 명이었는데 시어머니는 두 분이 계셨다. 아들을 못 본 시아버지가 새로이 부인을 얻은 것이다. 당연히 호적에는 동거인으로 등재되어 있을 뿐 법적 아내는 아니었다. 22살의 남편은 첫아이를 임신시켜 놓고 군에 입대했다. 13명의 가난한 대가족의 집안일에 농사일에 시부모 봉양에 육아까지 다 낯설고 서러운 하루하루였다.

남편은 의가사 제대를 했다. 소장小腸을 1.5m나 잘라내는 큰 수술을 한 것이다. 본래 남편은 중학교 때 평행봉에서 떨어져서 허리가 뒤로 꺾였던 후유증까지 있었다. 당연히 힘든 농사일은 엄니의 차지가 되었다. 줄줄이 아이들이 태어났으며 연이어 세 명의 시동생이 이승을 떠났다. 생활고와 연애 때문이었다. 집안은 급격하게 어둡고 음습해졌다. 가산은 기울고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커다란 먹구름을 헤집어서 푸른 하늘을 꺼내는 것은 엄니의 몫이었다. 누구보다도 부지런해야 했고 경우가 바른 며느리여야만 했다. 수많은 쑥덕공론 사이에서 자식들도 기가 죽어갔기 때문에 엄니는 올곧은 정신을 강조하며 몸소 모범을 보였다. 남편의 줄기찬 폭음은 ‘알코올 의존증’을 지나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졌다. 1993년 사망할 때까지 아버지는 간경화증을 십 년이나 앓았고 설암도 덤으로 앙다물고 있었다.
병원 주치의는 엄니 덕분에 10년이나 견딘 것이라고 했다. 마을에서 잡히는 모든 뱀은 우리 집 약탕기에 들어갔다가 아버지의 목젖을 적시며 넘어갔다. 두엄무지에 굼벵이를 키워서 달였다. 염소를 키워서 겨울마다 한 마리씩 봉양했다. 동네에서 늘 얻어터지던 여린 감수성의 나를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 피신시킨 것도 엄니의 결정이었다. 엄니는 충남 홍성군 장곡면 신동리 신권마을에서 시집오셨다. 그래서 우리 집 당호는 ‘신권댁’이 되었다. 조기 입학한 나의 성적은 늘 꼴찌였지만, 사람들은 우리 집을 ‘신동댁’으로 바꿔 불렀다. 동네 조무래기들의 주먹을 피해 학교로 갔으나, 거기에는 더 큰 주먹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에는 어떠한 고난이 와도 집을 지키려던 엄니의 억척과 앞마당 추녀 밑으로 돌을 져 나른 나의 멍든 어깨가 있다. 땡감 같은 눈물이 있다. 마른 감꽃처럼 작은 미소가 있다. 훗날 작가이자 교사가 된 나는 늘 생각한다. ‘누구의 잘못인가?’ 엄니의 단호한 눈빛에 대하여. ‘장맛비는 누구에게 퍼붓나?’ 고난 속에서도 방긋 피어나던 엄니의 하얀 웃음을.
글. 이정록 시인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 「의자」 「정말」 「어머니학교」 「그럴 때가 있다」 등과 청소년 시집 「까짓것」 「반할 수밖에」,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지구의 맛」, 산문집 「시인의 서랍」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가 있다. 그림책 「달팽이 학교」 등 과 동화책 「아들과 아버지」 등도 냈다. 김수영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상, 한성기문학상, 풀꽃문학상, 천상병동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이야기발명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림. 이현석
1994년 겨울에 왕눈이로 태어났다. 고2까지 이겨울이란 이름으로 살았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린 책으로는 「반할 수밖에」 가 처음이다. 책과 함께 즐겁고 보람찬 여행을 하고 싶다. 실눈을 뜨고 관찰하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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