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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서점, 골목의 불빛 - 지도 위 파란 점을 따라 걷는 하루
  • 작성자
    webzine(2025-12-10)
  • 조회
    157
  • Institute
    of korean confucian culture
    25
    12

    웹진 솔비움

    작은 서점, 골목의 불빛
    - 지도 위 파란 점을 따라 걷는 하루

    김 은 지 진흥원 행정지원부 주무관

    핸드폰의 지도 어플을 열면 화면 군데군데 파란색 동그라미들이 떠오른다. 어느 지역으로 위치를 옮기더라도 동그라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독립서점을 찾아가는 습관이 찍어낸 파란 점들은 가보고 싶거나 좋아하는 독립서점의 위치를 저장해 둔 나만의 표시이다.

    ‘책방지도’를 만들어낸 취미는 우연히 들른 작은 서점에서 시작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엉성한 모양새로 책을 진열하고 있는 책장,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나는 나무바닥, 책 표지 위에 놓인 손글씨로 적은 책 소개 글. 기성품이 아닌 것들로 채워진 공간은 낡았지만 작은 소품 하나에도 서점 주인의 손길이 담겨있어 아늑하고 따뜻했다. 통유리창으로 오후의 햇살까지 한가득 쏟아지니 더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곳에서 일을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다. 내가 읽은 책을 내 손 글씨로 소개하고, 손수 내린 커피를 손님에게 건네는 일이 직업이 된다면 매일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연히 만난 작은 서점의 첫인상은 책과 커피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하는 일을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일’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독립서점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곳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안으로 들어가보게 되었다. 낯선 곳을 여행하게 되면 이 동네에는 어떤 서점이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들러본 서점들은 모습도 색깔도 다양했다. 독자들을 만나기 어려운 독립출판물을 우선으로 소개하는 서점이 있는가 하면, 성장을 주제로 독서모임을 진행하며 경제 도서들을 소개하는 서점도 있었다. 낭독회를 진행하며 전 세계의 문학을 소개하는 서점도 있었고 생일을 주제로 고객과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서점도 있었다. 각각의 모습 속에서도 서점들은 저마다의 개성있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같은 책도 책방 주인의 소개 글이나 분류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이 꽤나 신비로웠다.

    책방에 대한 환상이 잔뜩 펼쳐지던 무렵, 인생에서 처음 만났던 바로 그 독립서점에서 파트타이머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주저할 이유도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당연히 지원서를 냈고, 그 날 이후 나는 원하던 공간의 구성원이 되었다.

    하지만 로망이 일상이 되자 곧바로 책방 운영의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것 같아 더 정감이 갔던 공간은 노후화로 난방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워 겨울에는 등유난로를 피웠다. 책방의 온도를 올리려면 등유통에 있는 기름을 난로에 채워넣고 불을 지펴야 했다. 난로를 일정 시간 작동한 후에는 기름 냄새를 없애기 위해 환기를 시켜줘야만 했다. 또 여름에는 엉성한 모양새가 인상적이었던 책장이 더 엉성해지지 않도록 매일 제습기의 물을 비우며 실내 습도를 유지해줘야 했다. 사람의 손이 머문 물건에서 느끼던 아늑함은 매일 정성스레 움직여준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책과 함께여서 더 향긋했던 커피야말로 책방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커피가 서점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입원이자 손님을 모으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은 서점의 매출구조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일한 서점은 매일 90권의 책을 팔아야 한 사람의 한 달치 인건비가 마련되는 구조였다. 여기서 ‘인건비’는 최저임금을 뜻했고, ‘매일 책을 판매한다’는 것은 한 명의 직원이 1년 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함을 의미했다. 책 판매만으로는 매출을 올릴 수 없었고, 일정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커피를 판매해야만 했다. 책방에 여유로움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던 커피는 책이 상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판매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수입원이었던 것이다. 다른 서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커피 판매 외에도 공간을 대여해주고 책과 작가를 주제로 모임을 운영하며 부수적인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지만 독립 서점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전한 것 같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간한 『2024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전국 서점 중 도서만을 취급・판매하는 곳은 36%에 불과하고 63.8%의 서점은 문구, 잡화, 식음료, 헌책 등을 함께 취급한다.

    내가 잠시 함께했던 서점은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원도심을 지키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서점은 물론 주변 상권까지 활성화가 되었지만, 이로 인해 공간 임대료가 상승했고 서점은 이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작은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은 결과가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로 돌아온 것은 참 씁쓸했다.

    같은 편람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국내 서점은 총 2,484개로 2022년 2,528개보다 1.4%(44개) 감소했다. 그동안의 증감률이 2019년 –3.6%, 2015년 –9.2%, 2013년 3.5%임을 볼 때 감소폭이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감소폭의 둔화가 전부 독립서점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대형서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명확한 정체성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준 작은 서점들의 역할도 분명 컸을 것이다.

    단순한 용기나 이상만으로 공간을 지속하기에는 감내해야하는 어려움이 너무 많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서점이라는 공간을 유지하려는 노력들을 단지 ‘생계를 위한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최근 한 베이커리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직원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해당 베이커리의 창업자는 사건이 공론화되기 직전까지도 강연과 저서를 통해 ‘우리 모두는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성공담을 공유했지만 정작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보여준 태도는 본인이 말한 가치관과는 거리가 있었다.

    내가 이 사건에 계속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이에 대한 서점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서점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안타까운 사건에 대해 소리를 냈다. 제주도의 한 책방은 해당 대표의 책을 ‘산재’ 코너로 ‘박제’하겠다며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했다. 또 다른 서점은 ‘한 청년 노동자의 꿈이 꺾였다’며 대표의 책 표지에 굵고 큰 글씨로 자신의 주장을 적어 진열해 두었다. 표지에 적혀있던 ‘개성의 가짓수만큼 하나하나 아름답고 소중하다’라는 대표의 가치관은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 부도덕한 것이다’라는 문구에 가려졌다. 이처럼 독립서점들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며, 그들만이 만들어내는 공론화와 표현의 문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서점들을 지탱하는 힘은 경제적인 논리와 수익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신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원도심에서 밀려났던 서점은 새로운 곳으로 옮겨 더 단단한 정체성과 문화를 쌓았다. 자리를 옮긴 것이 더 좋은 기회가 되어 지금은 성심당과 함께 ‘대전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필수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단지 위치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지역의 문화를 지키고 꾸준히 일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백조의 발처럼 겉으로 보여지는 서점의 여유로운 분위기 뒤에는 분주하고 힘겹게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지역의 문화향유 기반이 되어 지역의 결을 바꾸고 있다. ‘진정성 있는 브랜드’가 살아남는 요즘, 내가 보고 겪은 작은 서점들이야말로 진정성의 가치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브랜드이자 문화기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서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켜내는 책방지도의 파란 빛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웹진 솔비움 VOL _ 03
    IKCC WEBZINE SOLB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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