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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려 이유태, 자유부동의 지식인 - 무실(務實)과 효(孝)의 실천적 철학
  • 작성자
    webzine(2025-12-10)
  • 조회
    240
  • Institute
    of korean confucian culture
    25
    12

    웹진 솔비움

    초려 이유태, 자유부동의 지식인 
    - 무실(務實)과 효(孝)의 실천적 철학

    이 병 주 진흥원 연구교육부 책임연구원

    이유태의 생애

    초려 이유태(李惟泰, 1607~1684)는 선조 40년부터 숙종 연간에 이르기까지 활약한 성리학자이자 예학의 대가이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적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그는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송준길, 송시열, 윤선거, 유계 등과 교유하였고, 이들은 ‘충청오현(忠淸五賢)’으로 불렸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선조 40년 전라도 금산현(현재 충남 금산군 노동리)에서 유학 이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때 부친을 여의고 모친 김씨 부인의 슬하에서 자랐으며, 열다섯 살에 진잠의 처사 민재문에게 배우고, 스승의 추천으로 연산의 김장생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깊이 익혔다.

    인조 12년(1634)에는 김집의 천거로 종9품 희릉참봉에 임명되었고, 이후 세자사부, 공조참의, 이조참의 등을 거쳤으며, 송시열·송준길 등과 함께 북벌계획에도 참여했다. 숙종 1년(1675)에는 예송 논쟁으로 남인의 탄핵을 받아 영변으로 유배되었다가 5년 후 풀려났다. 이후 충남 공주 중동에서 학문에 전념하다 1684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자유부동성’을 지닌 선비

    17세기 조선은 인조반정(1623) 이후 정묘·병자호란을 겪으며 정치적 혼란과 민심의 동요가 심화된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이유태는 사회를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바람직한 미래의 방향을 모색한 ‘자유부동성’을 지닌 지식인이었다.

    사회학자 김호기는 『시대정신과 지식인』(2012)에서 시대정신을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와 양식, 혹은 이념”이라 정의하며, 지식인은 생산적인 자기부정과 대안 모색, 혁신적 실천을 통해 시대정신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 김호기는, 지식인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존재구속성(存在拘束性)’과 ‘자유부동성(自由浮動性)’을 제시했다. ‘존재구속성’은 지식인이 얼마나 자기 시대를 대표하는가에 비중을 둔 개념이다. 어떤 지식인이건 시대적 구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지식인의 ‘존재구속성’이라고 규정하는데, 이 ‘존재구속성’은 지식인이 당대의 사회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자유부동성’은 지식인이 얼마나 자기 시대가 주는 한계를 극복하려 했는가에 비중을 둔 개념이다. 현실인식에 있어서 ‘자유부동성’을 지닌 생각이 깊은 지식인일수록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유태의 ‘무실(務實)’ 사상

    앞에서 살펴 본 ‘자유부동성’은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로 이유태는 시대정신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 사람이다. 이유태는 바로 이러한 자유부동성을 실천한 인물로 그는 시대상황에 맞게 ‘무실’사상을 주장하고, 이를 바람직한 미래를 향한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무실’은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실천에 힘쓴다.’는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 고려말 조선 초기에 새로운 왕조의 창업에 필요한 성리학적 정치이념이 필요하던 시기에 공론화된 개념으로, 조선 중기 율곡 이이에 의해 사회적 실천의 철학으로 체계화되었다. 율곡은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실효를 중시해야 한다.”는 무실을 역설했고, 이유태는 이러한 율곡의 사상을 계승하여 「기해봉사(己亥封事)」에서 당시의 시국을 통찰하며 “윗사람에게는 다스림의 실공이 없고, 아랫사람에게는 책임의 실공이 없으며, 학교에는 선비를 기르는 실공이 없다.”고 실제로 하는 것이 없이 형식적으로만 되어있다는 폐단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무실’을 제시했다.

    이유태의 ‘무실’은 시대정신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방향 중 하나로 이를 구체화한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이다. 이유태는 수양을 중시하는 수신(修身)을 무실의 기본조건으로 삼고, 그 시작점을 독서로 두었다. 그의 저서인 『초려집(草廬集)』에서 독서를 강조하였는데, 독서를 노복·밭·처와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과 경서 공부를 처세하는 도리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유태는 독서를 통해 학문을 수학하고 그 결과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여긴 것이다. 수신이 확장되면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까지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무실론적 효사상의 특징

    이유태는 위에서 말했듯이 ‘무실’의 기본을 수신으로 하였고, 또 그 수신의 근본을 ‘효’로 삼아 올바른 행실을 통해 자신을 닦은 후에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효를 수신의 근본으로 삼은 것은 가정환경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어머니 청풍 김씨는 남편의 사후 절의를 지키며 슬픔 속에서도 자식을 학문으로 이끌었고, 형 이유택 또한 어머니의 상을 치르며 극진한 효행으로 명정을 받았다. 이러한 가족의 행동들은 이유태로 하여금 효를 인간의 도덕적 근본으로 인식하게 한 바탕이 되었다.

    이유태의 무실론적 효사상은 수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무실은 항상 독서와 이치를 궁구하는 일에 전념하였으며, 독서를 통한 의리 밝히기와 고금의 인물을 논하여 시비를 구별하는 등 수신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집안과 향촌을 다스리고 국가를 다스리는 등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실사구시적 효 정신을 보여주었다. 또한 마음에 모든 이치가 있다며 마음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간의 본성인 마음을 지켜 부모에 대한 효도와 자제에 대한 사랑이 발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인간애로의 확장을 볼 수 있다. 먼저, 그는 수신을 효로부터 시작하여, 무실의 기본조건으로 삼고 그 방법으로 독서를 제시하였다. 그 다음으로 제가(가정을 다스리는 것)의 방법으로 효제(효와 공경)을 구체화했다. 그의 저서인 「초려정훈(草廬庭訓)」에서는 가정을 바르게 다스리는 법을 효를 중심으로 제시했다.

    또, 향약(鄕約)을 통해 효를 지역사회로 확장해 마을 공동체가 함께 예법을 지키고, 덕업상권의 정신으로 상호 협력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효는 나아가 나라 사랑으로 이어졌다. 「기해봉사」에서 향촌과 국가를 아울러 다스리는 방책을 제시하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경세관을 드러냈다.

    그는 수신을 통해 인간애를 중시했고, 효를 이웃사랑과 사회구제의 실천으로 확장했다. 「기해봉사」에서는 병자호란 뒤의 도덕적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인재 양성과 풍속 교정, 구폐 혁신을 제안했다. 「초려정훈」에서는 학문과 수양을 통한 처세를 강조하였다.

    그의 ‘도덕적 주체 확립’은 단순한 이론이 아닌 ‘무실’을 바탕으로 한 실천의 덕목이며, 가정과 사회, 국가로 확장되는 도덕적 운동이었다. 「기해봉사」·「학교모범(學校模範)」·「초려정훈」 등에는  ‘수신’ → ‘무실적 효 실천’ → ‘인간애’ → ‘나라사랑’으로 이어지는 실천 방법이 담겨 있다.

    현대적 의미

    이유태의 무실론적 효사상은 ‘자유부동성’을 지닌 선비정신을 기반으로, 시대를 직시하면서도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효와 공경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실천적 철학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사상을 근거로 본 효의 현대적 의미는 3가지 시사점을 지닌다.
    첫째, 가족의 형태변화, 문명의 발달 등과 관계없이 인간의 본성인 ‘효제’를 회복하기 위해 오륜의 정신을 습득해야 하고,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의 정신을 습득하고 수신을 통해 본성을 회복하여 시대에 맞는 효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시대가 바뀜에 따라 대가족의 핵가족화, 물질문명의 발달, 개인가구의 증가, 다문화사회 및 지구촌화 등 다양하고 복잡한 변화가 있더라도 수신을 통해 회복한 본성과 인간애를 결합하여 실천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유태의 효 사상이 「향약」을 통해 제가·치국·평천하로 확장되었듯이, 동양의 전통적인 가치인 효사상을 이웃·나라·세계로 확장하여 각각의 상황에 맞는 효를 실천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올바르고 정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시대 및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효개념을 가지고 ‘시중지도(時中之道)’를 실천해야 한다. ‘시중’은 현실 개혁의지를 지니고 진리에 부합하는 것을 실천하거나 또한 어떤 일이나 현상이 특수한 상황에 있을 때 공익을 위하여 마땅히 지키거나 행하는 도리나 규범인 상황윤리이다. ‘시중지도’는 현실적 상황에 가장 맞게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는 인간의 본성으로 잘 지켜야만 하는 가치이다. 전통적 효행은 부모에 대한 극진한 봉양, 병간호, 신체 훼손 금지, 3년 시묘 등 희생적인 행동 중심이었다. 현대에 들어 효심(효를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효행(효를 실천하는 방식)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러나 ‘효’를 이론으로만 알거나 물질적 봉양만 하는 것은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태가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지혜롭게 대세를 식별하고 ‘시중지도’를 실천하였듯이, 정신적인 봉양과 물질적인 봉양의 조화, 상황에 따라 불효가 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효가 될 수도 있는 경우 등을 정확히 판별하여 현실적 상황에 가장 맞는 도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웹진 솔비움 VOL _ 03
    IKCC WEBZINE SOLB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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