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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롱테이크가 던지는 질문 : 무엇을, 얼마나 오래 바라볼 것인가?
  • 작성자
    webzine(2025-12-10)
  • 조회
    39
  • Institute
    of korean confucian culture
    25
    12

    웹진 솔비움

    영화 속 롱테이크가 던지는 질문 :
    무엇을, 얼마나 오래 바라볼 것인가?

    송 석 주 영화평론가

    최근 독일로 6박 7일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기간 중 시간을 내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영화박물관에 들렀다. 1~2층 상설 전시관에는 초기 영화사에 등장하는 각종 카메라 등 영상 장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3층 특별 전시관이었다. 이곳에는 고전부터 현대영화까지, 롱테이크(long take)가 인상적으로 활용된 영화들이 클립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롱테이크는 장면을 자르지 않고, 길게 담아내는 기법이다. 대중영화에는 평균적으로 2~3초마다 한 번의 컷(cut)이 있다. 2~3초마다 장면이 바뀐다는 얘기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통상적으로 장면이 30초 이상 지속하면 롱테이크로 간주한다. 롱테이크는 어떤 종류의 분절도 허용하지 않는다. 프레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시공간의 단절 없이 한 호흡으로 길게 담는다. 감독들은 그러한 지속이 만들어내는 영화적 에너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롱테이크를 활용한다.

    영화 <열차의 도착>

    사실 롱테이크는 영화의 탄생과 함께 시작했다. 1895년 12월, 파리의 그랑카페에서 상영된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은 50초 분량의 롱테이크 영화다. 정교한 촬영‧편집 기술이 없었던 시절의 초기 영화들은 시공간을 한 번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20년대에 들어와 영화 문법이 발전하면서 롱테이크는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감독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는 <마지막 인간>(1924)에서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1분 이상의 롱테이크로 담아냈다. 당시로서는 도전적인 장면이었다. 장 르누아르는 <게임의 규칙>(1939)에서 롱테이크를 통해 한 화면에 여러 인물과 사건을 병치하면서 관객에게 이미지의 선택권을 부여했다. 프레임 안에서 무엇을 볼지, 그 의미를 어떻게 읽을지 관객이 스스로 결정하게 한 것이다.

    누벨바그의 거장 장뤽 고다르는 <주말>(1967)에서 교통 체증의 혼란스러운 풍경을 7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담아내며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 소외를 풍자했다.

    영화 <화양연화> / 출처 : 디스테이션

    복잡한 동선과 화려한 군무, 카메라의 이동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관객을 몰입시키는 롱테이크도 있다.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은 <로프>(1948)에서 컷을 최소화해 영화를 찍었고, 스탠리 큐브릭은 <샤이닝>(1980)에서 스테디캠을 활용한 롱테이크로 미스터리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왕가위는 <화양연화>(2000)에서 고요하면서도 운율감이 감도는 롱테이크를 통해 주인공들의 금기시된 사랑을 그려냈다. 데이미언 셔젤은 <라라랜드>(2016)에서 리드미컬한 롱테이크를 활용해 인물들의 꿈과 희망을 시각화했다. 이 밖에도 <8과 1/2>(1963), <록키>(1976), <엘리펀트>(2003) 등의 영화에서 감독들은 서사보다는 분위기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롱테이크를 사용했다.

    영화 <그래비티 포스터> / 출처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디지털 카메라과 히든 컷(hidden cut), CG 등의 발전은 롱테이크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했다. 알폰소 쿠아론은 <그래비티>(2013)와 <로마>(2018)에서 기술적 완성도와 감정적 밀도를 결합한 롱테이크를 구현했다. 특히 10분이 넘는 <그래비티>의 오프닝 시퀀스는 압도적 웅장함을 자아낸다. 이 시퀀스에서 관객들은 공포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광활한 우주의 풍경을 체험한다. 샘 멘데스의 <1917>(2019) 또한 전쟁의 리얼리티를 하나의 숏(shot)에 담은 영화다.

    특별 전시관 벽에는 “우리는 인생을 하나의 롱테이크처럼 경험한다. 인생은 끊어짐이 없는 하나의 숏이다. 편집이야말로 인위적인 장치일 뿐이다”라는 샘 멘데스의 말이 새겨져 있다. 이 같은 영화들은 시공간을 한 호흡으로 길게 담아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했다.

    영화 <올드보이 장도리 장면> / 출처 : CJ ENM

    우리나라 영화로 예를 들면, 우선 임권택의 <서편제>(1993)가 있다. 그는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길을 걷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5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담아냈다. 이 장면에는 시골길이 풍기는 토속적 정취가 있고, 한국의 미(美)와 한(恨)이 서려 있으며, 그 모든 요소를 한 숏에 담아내려는 카메라의 안간힘이 배어 있다.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2003)의 논두렁 장면에서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코믹하면서도 활동적인 롱테이크로 잡아냈다. 박찬욱은 <올드보이>(2003)에서 장도리를 들고 싸우는 주인공의 모습을 좌우로 움직이는 독특한 방식의 롱테이크로 포착했다.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이 장도리 장면이 특별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장면이 길게 이어질 때 비로소 드러나는 세계

    이쯤에서 이미지와 관련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짚어보자. 게오르그 짐멜은 근대의 대도시가 인간의 시각적 인지 구조를 변화시켰다고 보았다. 그는 대도시의 탄생으로 인해 사람들이 사물을 ‘비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시각적 인지 구조의 변화로 도시인들이 ‘신경과민증’과 ‘둔감증’에 시달리게 됐다는 게 짐멜의 설명이다. 도시의 풍경이 사람들의 눈에 공허한 자극만 남기고 내용을 사라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후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분산적 지각’이라는 용어를 통해 짐멜의 논의를 발전시켰다.

    크라카우어의 논의에 따르면, 도시인들은 더 이상 피사체의 내면을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피사체의 이면에 담긴 의미를 발굴하려는 시선이 존재했다면,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끊임없이 변하는 이미지 속에서 피사체의 표면에만 잠시 머문다. 인간의 지각이 깊이보다는 순간을, 사유보다는 자극을 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물의 피상적 이미지만 수용하려는 분산적 지각이 도시인의 주된 지각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게 크라카우어의 주장이다.

    이미지의 충격을 논할 때 발터 벤야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쇼핑몰과 교통의 발전이 파노라마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 보았다. 거리의 전광판은 수많은 빛과 정보를 쏟아낸다. 이에 따라 거리의 산보자들은 주의 깊은 지각보다 순간적이고 단편적인 지각에 익숙해진다. 달리는 열차 창밖으로 빠르게 변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경험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대도시의 탄생과 교통수단 등 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지각 능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철학자들의 이러한 논의도 이미 100년 전의 얘기다. 현대인들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더욱 짧아진 호흡의 영상을 소비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빠르게 전환하는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사유의 의지를 잃어가고 있다. 전시관에서 만난 박물관 관계자는 내게 “장면 하나가 20초만 지나도 관객들은 이상한 감정에 빠진다”라고 설명했다. 내 생각에 20초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티브 맥퀸의 <헝거>(2008)에서 두 인물이 교도소 안에서 나누는 17분의 롱테이크를 볼 때 관객들은 지루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우리의 시간>(2018)에는 멕시코의 밤하늘을 7분 동안 담아낸 멋진 롱테이크가 있는데,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어떤 감정에 사로잡힐까.

    샘 멘데스의 말처럼 롱테이크는 인위적 구성을 거부하려는 욕망이다. 이는 화면에 기술적 개입을 최소화할수록 영화가 투명해진다는 믿음과 연관되어 있다. 작가주의 영화감독들이 롱테이크를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긴 호흡에 압축된 시공간은 영화를 잠시나마 현실로 바꾼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이미지에 관한 해석의 여지를 넓히는 것이다. 스크린 안과 바깥의 세계가 느슨하게 연결되면서 관객이 새로운 차원의 감각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롱테이크는 오늘의 영상 환경과 충돌한다. 사람들은 숏폼(short-form)의 세상에서 빠르게 느끼고, 빠르게 잊는다. 과거에 비해 정보의 수용량은 많아졌지만, 무언가를 오래 붙들고 생각하는 시간은 짧아졌다. 숏폼은 시간을 파편화하며 집중을 분산시킨다. 반면 롱테이크는 시간을 붙잡고자 한다. 화면이 길게 지속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를 진득하게 바라볼 수 있다. 인물의 숨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해가 지면서 변하는 도시의 모습이 드디어 눈에 들어온다. 이 같은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며 살고 있는가. 무엇을 기억하고, 흘려보내고 있는가. 현실의 빛과 바람, 사람의 온도를 얼마나 또렷하게 느끼고 있는가. 스크린 바깥에 흩어진 작지만 소중한 일상이 여전히 당신에게 살아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롱테이크는 이미지의 속도가 사유의 속도를 앞서는 시대에 잃어버렸던 삶의 감각을 회복하려는 일부 감독들의 영화적 태도이자 실천이다.

    글. 송석주

    영화평론가. 기자

    기자 생활 중 제15회 쿨투라 신인상 영화평론 부문에 당선돼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TBN '달리는 라디오', '낭만이 있는 곳에' 등 영화 코너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다. 한국기자협회 ‘2023 기자의 세상보기' 공모전에서 「법원으로 출근하는 영화평론가의 이야기」 라는 제목의 글로 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이투데이 문화팀 기자로 일하고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웹진 솔비움 VOL _ 03
    IKCC WEBZINE SOLB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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