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
작성자webzine(2025-12-10)
-
조회103
-
Institute
of korean confucian culture25
12웹진 솔비움
나는 정록파다
이 정 록 시인
일러스트 Ⓒ이현석 원고료
- 어머니 학교 11
요샌 글이 통 안 되냐?
먼저 달에는 전기 끊는다더니
요번 달에는 전화 자른다더라.
원고료 통장으로 자동이체 했다더니
며느리한테 들컸냐?
글 써달란 데가 아예 없냐?
글삯 제대로 쳐줄 테니까
어미한테 다달이 편질 부치든지.
글세를 통당 주랴?
글자 수로 셈해 주랴?『어머니 학교』 (열림원, 2012)
중학교에 입학하자, 내가 졸업한 분교 타제석기랑 면사무소 옆 본교 마제석기랑 반반 섞였다. 여전히 내 존재감은 달궈진 양철지붕에 떨어진 두어 방울 여우비 같았다. 초라했다. 키순으로 정한 학급번호도 일 번이었다. 공부는 더 힘에 부쳤다.
그런 못난 돌이 어떻게 시인이 되고 선생이 됐을까? 나는 언제 처음 시를 썼을까? 분명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 숙제나 국어 시간에 동시를 썼을 것이다. 얼마나 멋지게 쓰려고 머리를 굴렸을까? 그런데 왜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을까? 그건 가슴과 눈에서 꺼낸 까만 씨앗이 아니라, 흉내 내기나 뽐내기의 꽃잎 같은 글짓기였기 때문일 거다.첫 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중학교 일학년 스승의 날이 떠오른다. 선생님들은 운동장 울타리 옆 천막 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배구를 하시고, 전교생은 두 시간 동안 ‘스승에 대한 감사의 글짓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감사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소만 한 ‘원망의 마음’이 병아리 눈물만 한 ‘감사의 새가슴’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간 선생님께 받은 상처를 썼다. 분노와 비난의 글쓰기는 속도가 빠르고 집중이 잘 됐다. 반벙어리 며느리도 시어머니 욕은 밤새 한다는 말이 있다. 친구들이 자신이 쓰다가 남은 원고지를 주며 계속 쓰라고 했다. 반장이 ‘선생님, 오신다!’ 양치기처럼 소리쳤지만, 아이들은 서로 읽겠다고 아우성쳤다.
‘정록이 글 쓰잖아. 조용히 해!’ 주먹 센 꺽다리가 도떼기시장 같은 교실을 도서실처럼 조용하게 잠재웠다. 불안했다. “이런 글은 선생님도 읽어야 해!” 최소 정학까지 각오했다. 퇴학을 당할 수도 있다. 글 사이사이에 날것의 욕지거리를 많이 박아놓았기 때문이었다. 스승에 대한 글짓기인데, 선생님이란 존칭은 없고 ‘미친개와’ ‘양재기’와 ‘저승사자’만 등장했다. ‘아! 이정록의 최종학력은 중1 중퇴구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상을 탔다. 내 상처를 읽은 초임 여선생님이 억지로 입선이라는 상을 만들어주셨다. 며칠 뒤 복도에서 만난 여선생님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같은 동료 교사로서 대신 사과할게.’ 눈빛이 말을 건네는 듯했다. 가슴에서 빙하가 녹는 듯했다. 그 뒤로 난 국어 시간만 기다렸다. 칭찬은 돼지도 순대를 선물한다! 집에 와서 삼촌이 쓰던 국어사전을 머리맡에 놓고 국어책에 나오는 모르는 낱말을 밤새 찾아 베꼈다.
하지만 발표할 차례가 오지 않았다. 전체 일 등이 국어 선생님의 질문을 독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체 일 등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국어 선생님은 “능률”이란 낱말의 뜻을 물었지만, 교실엔 침묵만이 가득했다. 나는 손을 힘껏 뻗어 올렸다. 국어 선생님께서 드디어 다가왔다.
“정록아. 화장실에 다녀 와!”
나는 능률의 뜻을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이들의 야유와 환호성이 섞였다. 그날 이후 우리 교실에는 올백파와 정록파가 생겨났다. 전 과목으로 낱말 찾기가 늘어나자 성적도 급상승했다.그해 가을, 나는 학교 대표로 읍내 글짓기대회에 나갔다. 하지만 원고를 내지 못했다. 두어 줄밖에 쓰지 못한 거다. <코스모스>란 글제였는데, ‘피지 않은 코스모스 꽃봉오리를 친구의 눈에 대고 터뜨리면 친구가 우는 것 같다. 친구의 눈에서 향기가 난다.’에서 펜이 나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들국화>라는 또 다른 글제로 쓰기 시작했는데, 입에서 단내가 났다. ‘소에게 풀을 뜯기러 가면 소가 먹지 않는 풀이 있다. 소도 뜯어먹지 않는 독한 꽃, 들국화!’ 거기에서 또다시 펜은 자신의 작은 보습을 송곳처럼 처박고 멈춰버렸다.
생각해보면 그게 내가 쓴 맨 처음의 동시였던 것 같다. 진심으로 쓴 씨앗의 글이었다.
내 글에는 벌을 내려야 할 욕지거리의 글에 외려 상을 주신 오순애 선생님의 따스한 손길이 있다. 어렵게 수소문해서 찾은 선생님께서 짧은 문자를 보내오셨다. “미안해요. 저로 인해 좋은 작가가 되셨다는데, 저는 이정록 씨에 대한 기억이 한 톨도 없어요. 좋은 글 많이 쓰세요.” 몹시 아쉽고 서글픈 생각도 들지만, 나는 여전히 정록파다.글. 이정록 시인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 「의자」 「정말」 「어머니학교」 「그럴 때가 있다」 등과 청소년 시집 「까짓것」 「반할 수밖에」,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지구의 맛」, 산문집 「시인의 서랍」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가 있다. 그림책 「달팽이 학교」 등 과 동화책 「아들과 아버지」 등도 냈다. 김수영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상, 한성기문학상, 풀꽃문학상, 천상병동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이야기발명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림. 이현석
1994년 겨울에 왕눈이로 태어났다. 고2까지 이겨울이란 이름으로 살았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린 책으로는 「반할 수밖에」 가 처음이다. 책과 함께 즐겁고 보람찬 여행을 하고 싶다. 실눈을 뜨고 관찰하길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