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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유교 인물 클래식 시리즈-목은이색_마주하다
- 저자 : 관리자
- 발행일 : 2023-12-01
- 종류 : 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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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와 조선이 교체되던 시기에 고려를 부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정치가였고, 조선의 국교(國敎)가 되는 성리학에 정통하여 수많은 제자를 배출한 학자였으며, 6,000수에 가까운 시와 200여 편의 산문을 남긴 작가이기도 했다. 한 시기를 대표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 는데 아무래도 망해버린 나라의 신하였고, 이후 개국한 조 선에서 걸출한 위인이 다수 나왔기 때문에 현재에는 명성만 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할 수 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조선의 학자들은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만을 정통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소유했음은 물론 이를 신앙으로 지니고 있었던 이색의 학문을 평가절하했던 점을 명성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하나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은가 한다. 실제로 조선의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목은의 학문에는 불교의 색이 있어서 순수하지 못하다’는 평을 남겼다.
그러나 문학 방면에서 이색은 ‘대가(大家), 대문호(大文豪)’라 는 수식어를 붙여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을 창작하였다. 특히 이색 문학의 본령은 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어느 문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 우선 앞서 밝혔듯 작품의 양이 여타 문인을 압도할 만큼 많다. 한국에 한문학이 유입된 이래로 이색처럼 많은 양의 시를 남긴 문인은 그리 많지 않다.
이색의 시 전편에는 도도히 흘러온 시의 역사가 스며있다. 이색은 한시의 모든 형식을 자유자재로 보여주었고, 자신의 시에 이전까지 유행했던 다양한 시풍(詩風)을 자연스레 녹여 내었다. 주제 선정에 있어서도 유불을 넘나드는 철학, 사회, 풍속, 자연 등으로 그 폭이 매우 넓었다. 이래서 후대의 이름난 문장가들은 이색을 스승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이처럼 큰 사람의 시를 전공했다. 2009년에 이색의 영물시(詠物詩, 사물을 읊은 시)를 주제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 를 받았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무척 신기한 경험을 했다. 분 명 작품 하나하나를 연구 대상으로 보고 무언가 쓸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부지불식간에 넋을 놓고 시만 읽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시를 읽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사라지면서 숨이 트이고 편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연구자로서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이색이라는 대시인을 향한 존경심도 놓지 않았다.
이색의 시는 주제의 폭이 넓고, 그만큼 시의 정서도 다채롭다. 때문에 ‘이 사람의 시는 이렇다’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색의 시를 읽고 있는 순간만큼은 호흡이 안정되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 野花 야화, 들꽃 」
野花隨處不知名 야화수처부지명
蕘叟樵童眼界明 요수초동안계명
豈必上林爲富貴 기필상림위부귀
天公用意自均平 천공용의자균평
곳곳마다 핀 들꽃, 이름은 몰라도
나무꾼과 목동의 시야 밝혀 준다네.
상림원上林苑 꽃들만 부귀하겠나?
하늘의 마음 씀씀이 공평하구나
이색은 이런 자세로 사물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나름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온화하고 넓은 마음이 독자에게 편안함을 준다. 이 책은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서 ‘K-유교인물 클래식 시 리즈’라는 제목으로 한국, 특히 충청도 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의 명문 또는 명시를 한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교양 독자들에게 소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만들어졌다. 한산(韓山) 사람인 이색이 시리즈의 앞자리에 위치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위의 작품처럼 읽었을 때 마음이 차분해지는 시 50수를 담아두었다. 6,000수에 가까운 시 중에서 50수를 선택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우선 지면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내용이 좋아도 길이가 긴 작품은 배제하고, 절구 (絶句) 26수, 율시(律詩) 24수를 뽑았다. 전공자가 아닌 교양 독자를 위한 책이고, 영어 번역도 함께 실렸으므로 주석을 붙여야 설명이 가능한 작품도 배제했다. 필요에 따라 군데군데 의역을 했지만, 되도록 직역해서 꾸미지 않으려 했다. 나의 이름으로 번역을 했지만, 이색을 전공한 선배 학자들의 번역과 이미 출간된 두 종의 번역서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고전번역원의 『국역 목은집』에서 큰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그래도 혹시 번역에 오류가 생길까 염려되어 고려 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로 계신 박성규 선생님께 감수를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나의 박사 지도 교수이시기도 하다.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끝으로 이색의 아름다운 시를 소개할 기회를 주신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 감사드리며, 모쪼록 이 책이 교양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 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