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진 소개
호서 엘리트, 낭성팔현(琅城八賢)
17 COURSE

호서 엘리트, 낭성팔현(琅城八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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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청주는 호서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충청도(忠淸道)란 이름을 지을 때에도 청주(淸州)의 앞 글자를 따 그 무게에 힘을 실어주었다.
조선 성리학의 핵심세력이었던 호서사림의 학맥은 청주 일대의 사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청주지역 사림을 이끈 핵심세력인 ‘낭성팔현(琅城八賢)’은 청주의 별칭 낭성에 살았던 여덟 명의 어진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조선 중기 경주 이씨의 집성촌인 청주시 미원면 일대에서 활동한 서계 이득윤은 낭성팔현 중 한 사람으로 청주사림의 구심체 역할을 하였다. 이득윤은 부친 이잠의 뒤를 이어 후생을 훈도하는 것을 책무로 삼아 청주지역의 교육에 힘썼던 유학자로서 17세기 전반 청주에 근거한 지식 계층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청주의 기호학파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김장생의 예학정신을 계승한 기호사림 중 한 명이다.

아홉 계곡의 보물 옥화구곡
옥화구곡은 근래에 붙여진 이름인 옥화구경(玉華九景)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들판 한가운데 옥구슬이 떨어진 모습’이라는 뜻을 지닌 옥화구곡은 청주지역 선비들의 이상향이었다. 청명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철학의 공간이자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강학의 공간이었다.
옥화구곡의 가치는 그곳을 거쳐 간 많은 인물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옥화구곡을 처음으로 설정한 조선 중기 성리학자 서계 이득윤은 옥화의 아름다운 자연과 벗하면서 글공부를 했다. 괴산군수로 있을 때는 선정을 베풀어 칭찬이 자자했고, 그의 아들과 손자 역시 옥화구곡에서 청풍명월을 노래하며 청렴한 일생을 마쳤다.
송시열과 그의 절친한 벗인 홍석기는 신선봉 아래에 ‘후운정’이란 정자를 짓고 공직에서 물러나 말년을 고고하게 살았으니, 그가 풍류를 읊던 정자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그대로 남아있다.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일대
시기 | 1609년(광해군 1)설정
용도 | 관양, 수양

옥화대에서 만난 옥화서원

옥화구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따라 천경대를 지나면 오른편에 옥화서원을 알리는 전통 건축물이 보인다. 이 서원은 1717년에 서계 이득윤, 주일재 윤승임, 옥계 박곤원, 돈암 윤사석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지금의 사당은 1989년에 다시 세운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 홑처마 맛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양회방에 3개의 쌍문을 달고 ‘숭현사’라는 편액을 달았으며 마당 앞에 ‘옥화서원’ 편액을 내걸은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쌓았다. 사당 앞 ‘주일재’라 편액한 건물 안에는 1674년에 송시열이 지은 ‘주일재잠’, ‘옥화대명’과 1760년에 송환기가 지은 ‘주일재중건기’가 걸려있다.
여성 철학자 윤지당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옥화대
옥화대에서 10대를 보낸 윤지당 임씨는 조선 최고의 여성 성리학자로서, 여성 선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부친 임적은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당쟁의 풍파 속에서 항상 자연에 은거하며 일생을 살고 싶어하였다. 부친이 작고하고 그녀가 9살이 되던 해 전 가족이 청주 옥화라는 산골마을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오빠 녹문 임성주와 함께 학문을 나누며 깊은 사유를 펼쳐나갔다고 한다. 여성의 배움과 사회 활동을 억제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홀연히 등장해 여류 성리학자로 신념을 가지며 뚜렷하게 학문적 성취를 이뤄냈다.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2길 50
시기 | 1717년(숙종 42)
용도 | 교육, 제향

선현의 자취를 만경정·추월정·세심정


옥화서원을 지나 옥화대로 향하는 작은 오솔길로 가다보면 청명한 가을 달을 닮은 추월정, 세상 모든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만경정, 마음을 닦고 씻는다는 세심정이 있다. 관직을 떠나 산천에 머물던 선비들이 청명한 자연과 하나 되는 철학의 공간이자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으며 학문을 연구하던 공간이었다.
만경정
윤사석은 연산군 때 거듭되는 사화로 현인군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고, 가족들과 함께 옥화리로 내려와 옥화대 위에 만경정을 짓고 은거하였다. 만경정 앞에는 윤사석의 유허비와 추모비가 있다.
주소 | 충북 충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132-2
시기 | 조선 전기
용도 | 관망, 휴식
추월정과 세심정
만경정을 지나 옥화대가 보이는 숲의 오솔길로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추월정, 오른쪽으로는 세심정으로 향하게 된다. 추월정은 서계 이득윤이 세운 정자이며, 세심정은 그의 문생이었던 주일재 윤승임이 평생 벼슬을 단념하고 스승인 이득윤의 가르침을 따르며 은일했던 곳이다.
추월정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137-2
시기 | 1609년(광해군 1))
용도 | 관망, 휴식
세심정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137-1
시기 | 1646년(인조 24)
용도 | 관망, 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