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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유학의 뿌리를 딛고 만나는,
조선후기 집성촌의 고택

10 COURSE

약도

충남유학의 뿌리를 딛고 만나는,
조선후기 집성촌의 고택

10 COURSE

서산

서산은 고려시대에 귀화한 남송의 관인 정신보가 남긴 충남유학의 뿌리를 잘 간직한 도시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라 불리는 안향보다 50여 년 앞서 성리학을 전파했으며, 아들 정인경과 함께 ‘서산 정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경주김씨, 서산류씨 등이 19세기 이후 건립한 매력적인 전통양반가옥들을 잘 보존한 도시이기도 하다. 처마 끝 차양의 변화, 운현궁을 본 떠 만든 양반가옥의 황토빛 담장, 예민 이씨가문의 역사와 함께한 비자나무 등은 결코 식상하지 않은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전한다.

유관순열사유적지

왕후의 생가와 이웃한 서산 경주 김씨 고택

유관순열사생가

서산 경주 김씨의 집성촌이 있는 한다리마을은 서산 경주 김씨의 또 다른 이름 한다리 김씨라는 별칭의 유래이기도 하다. 조선 명종 때 김연이 이곳을 은거지로 택하였고 그의 후손들이 이 고장에 대대로 머물기 시작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국가 위기에서 활약하면서 서산의 대표적인 가문으로 성장하여 수십 명의 정승과 애국지사를 배출한 명문가로 꼽힌다. 추사 김정희도 이곳 경주 김씨 출신이다. 고택의 사랑채 기둥에 붙어있는 주련(柱聯)의 문장들은 김정희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고회부처아여손(高會夫妻兒女孫)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 손녀의 모임이다.
춘풍대아능용물(春風大雅能容物) 봄바람처럼 폭넓은 아량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추수문장불염진(秋水文章不染塵) 가을 물처럼 맑은 문장은 먼지에 물들지 않는다.

계암고택의 건축적 특징은 한옥의 처마 끝에 달린 차양이다. 햇빛을 가리고 비바람을 막기 위한 처마의 끝에 덧달아 더 길게 빼는 것을 겹처마, 즉 부연이라 한다. 하지만 1900년대 들어서부터 부연이 무거워져 구조체에 부담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차양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택 사랑채의 차양채는 강한 햇빛으로부터 책이 바래는 것을 막고 더운 여름을 피하게 해주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이웃집,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생가

정순왕후 생가는 조선 효종 때 예조참의를 지낸 김연의 7대손 김홍욱의 집으로 아버지 김적을 극진히 모시고 산다는 소식을 들은 효종이 하사한 집이다. 이후 김홍욱의 4대손이자 정순왕후의 아버지 김한구에게까지 이어졌으며, 김한구의 맏딸인 정순왕후가 이 집에서 태어났다. 고개 중 가장 넘기 어려운 고개는 ‘보릿고개'란 대답을 한 간택 일화로 잘 알려진 정순왕후는 51세 연상인 영조와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다. 이 집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백림 김용환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주소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45 
시기 | 1800년대 중반 
용도 | 주거

면천향교

서산의 봄나들이 유기방 가옥

팔괘정전경

서산 여미리 마을에 있는 유기방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전통가옥으로 ‘큰말’이라고 불리는 마을의 가장 안쪽에 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경사지를 따라 기와를 얹은 토담이 둥글게 가옥을 감싸고 있다.

가까이에 있는 유상묵 가옥과 같은 서령 유씨 집안의 가옥으로 현재 유기방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고택 주인인 유기방 씨에 따르면 “이 고택은 400여 년 전 정종의 넷째 아들의 후손이 살던 집터인데 100여 년 전 제 조부께서 고택을 새로 짓고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 하면서 지금까지 4대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대청에는 정면과 측면에 들어열개문이 설치되어 있고, 방과 대청 사이에 사분합문(四分閣門)을 설치하여 용도에 따라 사랑방과 대청을 하나로 사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봄에 가옥을 사방으로 뒤덮은 노란 수선화의 물결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주소 | 충청남도 서산시 이문안길 72-10
시기 | 1900년대 초
용도 | 주거

유상묵가옥

단아한 멋 유상묵 가옥

유상묵가옥유상묵가옥유상묵가옥

고려시대 서산 일대에 정착한 서령 유씨 집안은 여미리의 이웃 마을 음암면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서령 유씨의 22세손인 유상묵이 자수성가하여 여미리에 있는 현재의 집으로 터를 옮겨 왔으며 유기방과는 사촌 간이라고 한다.

서울의 운현궁(雲峴宮)을 본떠 건축한 것으로 전해지는 유상묵 가옥은 1925년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전통 건축으로, 흔치않은 전통적인 반가이다. 기존 한옥과는 달리 유리문을 바깥쪽에 달았으며 사랑채 앞의 자그마한 정원은 일본식 정원을 표방한 듯 보인다. 하지만 엄격한 유교의 원리를 따라 사랑채와 안채를 담장으로 분리하고 출입문도 별도로 두었다.
본채 뒤쪽에 둥그런 반원 모양의 흙담으로 담장을 두른 점이 특이하다. 집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곳곳에 전통 의 멋이 배어 있어 단아한 선비를 연상케 하는 집이다.

불사이군, 유상묵의 선조 천문학자 유방택

유상목은 금현 유방택의 후손이다. 유방택은 천문학에 뛰어나 오늘날 기상청장에 해당하는 판서운관사를 지냈으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두 명의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여 고려 신하로서의 절의를 맹세하고 운둔했다. 조선 왕실에서 새 왕조의 천문도를 만들고자 유방택을 찾게 되었고, 할 수 없이 벼슬에 냐가 권근과 함께 새로운 천문도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국보로 지정된 ‘천상열차분야지도' 이다. 이후 태조는 유방택에게 개국공신 녹권을 내렸으나 그는 이를 사양하고 또다시 운둔하였다고 한다.


주소 | 충청남도 서산시 이문안길 32-12
시기 | 1925년(일제강점기)
용도 | 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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