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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유학타운에서 찾은 가문의 정취 예학의 종장, 광산김씨

3 COURSE

약도

충청의 유학타운에서 찾은 가문의 정취 
예학의 종장, 광산김씨

3 COURSE

논산①

기(畿)는 원래 '가깝다'라는 뜻으로 고대 중국에서 수도를 둘러싼 인근 지역을 가리키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가 이에 해당한다. 호수란 뜻의 호(湖)는 과거 호강(湖江)이라고 불렸던 금강 일대 충청도를 가리킨다. 이를 합친 기호(畿湖)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아우르는 말이다. 기호유학의 중심인 논산은 과거 수백 년 간 선비의 고장으로, 조선시대에 수많은 유학자를 배출하였다.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 터를 잡은 광산 김씨 가문은 논산 기호유학을 이끈 대표적인 가문 중 하나이다. 성리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을 비롯하여 예학(禮學)을 집대성한 대학자를 배출한 집안이다.

돈암서원전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돈암서원

돈암서원 돈암서원전경 돈암서원전경

돈암(遯巖)의 ‘돈’은 원래 은둔하다를 나타내는 ‘둔암’이었지만 사람들은 점차 돈암으로 부르게 되었다. 돈암은 사계 김장생이 벼슬을 사양하고 자연을 우러르며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쓰며 살고자 한 일생을 상징하는 기호와 같다.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건립한 정회당을 시작으로 인근의 명망 있는 집안 자제들이 이곳에서 학문을 쌓았고,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까지 강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예학의 기본 체계를 완성하였다. 이후 제자 우암 송시열과 동춘당 송준길까지 학문이 이어져 돈암서원은 기호학파의 큰 거점이 되었다.

돈암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뛰어난 건축적 외형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수백 년간 사람들의 삶 속에서 교육, 종교, 행정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내면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예학, 혼란한 사회질서를 바로잡다

김장생이 살았던 16~17세기는 선비들이 여러 차례의 사화로 고초를 겪으며, 특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당하며 조선의 지배체제가 크게 흔들렸던 시기이다. 김장생과 김집은 돈암서원의 유학자들과 함께 혼란한 사회질서를 바로잡고자 도덕적 관념세계보다 현실적 경험세계를 더 존중하는 실천적 기호학파의 맥인 '예학'을 형성하게 되었다. 

기호학파가 사유하는 건축, 응도당

응도당은 돈암서원의 강당으로, 돈암서원 건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건물이다. 기호학파는 유학의 옛 제도를 충실히 따라 응도당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당시 건축에 대한 안목과 손재주, 조형의지가 상당한 목수를 만나 건축된 것이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데 크게 일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시기 | 1634년(인조 12) 

용도 | 교육, 제향, 출판 

사계고택전경

예학의 대가 사계고택·김장생선생묘소일원

팔괘정전경임리정

사계고택 

사계고택은 조선후기 예학의 대가로 알려진 김장생이 말년에 낙향하여 후진양성에 몰두하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던 건물이다. 그는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이 있었으나, 관직에 나아가기보다는 제자들과 함께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아들 김집을 비롯하여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등 당대 쟁쟁한 유학자들 다수를 배출하여 기호학파의 토대를 만들었다.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 쓴 '사계고택' 현판이 걸려있는 대문을 열면 바로 전면에 사랑채인 은농재가 보인다.  '은둔하여 농사를 짓는 집'이라는 뜻의 은농재는 지금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큰 길에 있지만, 원래는 작은 구릉 뒤 숲에 가려진 은둔처의 모습이었다. 정면 4칸 규모의 대청이 없는 온돌방으로 되어있으며,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높은 기단 위에 서 있는 모습은 집주인의 품격을 드러낸다. 대문 옆으로 길게 붙은 대문채는 현재 '사계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김장생의 일대기와 유물을 비롯해 예학의 정신을 배우고 예법을 체험할 수 있다.

양천 허씨의 정절이 만든 광산 김씨 가문의 위상 

김장생 가문이 조선의 3대 명문을 이루기까지는 김장생의 7대조 할머니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17세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었고, 이를 가엽게 여긴 친정 부모는 몰래 개가(改嫁)를 시키기 위해 혼처를 알아보고 다녔다. 이를 알게 된 그녀는 유복자 아들을 데리고 연산(논산) 시댁까지 걸어서 내려와 시부모를 모시고 아들 철산을 사헌부 감찰로 홀륭히 키웠다. 철산은 좌의정을 지낸 국광(國光), 겸광(謙光) 등 아들 4형제를 낳았고 이후 사계와 같은 훌륭한 후손들이 배출되었다. 그러므로 광산김씨가 명문을 이룬 것은 양천허씨의 정절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소 | 충청남도 계룡시 사계로 122-4
시기 | 1602년(선조 35)
용도 | 주거 

김장생선생묘소일원 

논산에 있는 김장생선생묘소일원은 주변이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광산 김씨의 중흥을 이룬 김장생의 7대 조모 양천 허씨를 비롯하여 일가의 묘소와 사당, 비석 등이 한곳에 모여 있다.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산7-4

용도 | 추모, 제향 

림서원,임리정,팔쾌정 전경

스승과 제자의 연결고리 죽림서원·임리정·팔괘정

팔괘정팔괘정임리정

죽림서원은 율곡 이이 ·우계 성혼 · 사계 김장생 · 정암 조광조 · 퇴계 이황 · 우암 송시열 등의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장생은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황산에 서원을 짓고 강경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처음에는 황산서원으로 불리다 사액을 받은 후 죽림서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김장생이 이곳에 서원을 세운 이유는 송시열이 쓴 「죽림서원묘정비」에 나와 있는데, 황산이 호서와 호남의 중간에 위치한 관계로 이곳에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죽림서원은 김장생이『주자대전』의 석궁을 그대로 모방하여 세운 서원으로서 조선시대 서원건축의 전형으로 제시되고 있다. 논산 돈암서원의 건물 배치와 규모는 죽림서원을 창건했던 규례를 이어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죽림서원 오른쪽 병풍처럼 둘러선 대나무숲 사이의 돌계단을 올라가면 김장생이 건립하여 후학들에게 강학한 임리정이 보인다. 『시경』의 “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한 것같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은 것같이 하라”는 구절에서 따와 ‘임리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8 
시기 | 1626년(인조 4) 
용도 | 교육, 제향, 휴식 

이중환이 택리지를 집필한 장소, 팔괘정  

  내가 황산강가에 있으면서 여름날에 아무 할 일이 없어,  팔괘정에 올라 더위를 식히면서 우연히 논술한 바가 있다.  -택리지의 발문 中-

팔괘정은 황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송시열이 건립한 정자로, 율곡 이이를 추모하며 당대의 학자와 제자들을 강학하였던 장소로 전해진다. 팔괘정 옆에 있는 암벽에는 송시열의 글씨라고 전해지는 ‘몽괘벽(夢卦壁)’, ‘청초암(靑草岩)’이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져 있다. 몽괘는 ‘몽매한 이를 바름으로 기르는 것이 성인을 만드는 공이다’라는 뜻으로 송시열의 후학 양성 의지를 볼 수 있다.

스승을 사모하는 제자의 동향 

일설에는 송시열이 스승인 김장생이 임리정을 건립하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과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하는 제자의 마음으로 팔괘정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86

시기 | 1626년(인조 4) 

용도 | 관망,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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